그들을 알려면 역사부터 알아야한다. [닌텐도의 역사 - 2부] - It 정보 공유
그들을 알려면 역사부터 알아야한다. [닌텐도의 역사 - 2부]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들을 알려면 역사부터 알아야한다. [닌텐도의 역사 - 2부]

하드웨어 /리뷰

by Storm, Hong 2020. 1. 14. 12:53

본문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승승장구하던 닌텐도에도 암흑기를 걷기 시작합니다. 닌텐도의  협력사와 같던 여러 서드파티 업체들의 이탈이 시작되면서 닌텐도의 역사가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슈퍼 페미컴을 너무 믿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암흑기를 거쳤는지 알아봅시다.

 [ 승승 장구하던 닌텐도 1996~2005년 서드파티의 이탈이라는 암흑기를 격다. ]

  1985년 당시 리플렉 테크놀로지에서는 지금과 구글 글레스와 비슷하게 생긴 전자제품을 내놓습니다. 이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인 프라이빗 아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먼저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먼저 찾아갔던 회사는 세가였지만 퇴짜를 맞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2번째로 향한 곳이 바로 닌텐도 였습니다. 프라이빗 아이를 본 요코이 군페이가 당시 생고했던 VR에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승승 장구하던 슈퍼 페미컴의 히트 이후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경쟁사를 따라하지 못할 닌텐도만의 혁신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등장하는 버추얼 보이( Vitual boy) >

 가상현실을 컨셉의 생소한 기술에 독점계약을 체결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휴대용 게임기인 버추얼 보이1995년 출시 후 1년도 안되서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화면이 빨갛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개발 프로토타입 중에는 컬러 LCD를 사용한 제품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경우에는 사용자들이 컬러로 된 입체 이미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로인하여 단색 LED를 쓸 수 밖에 없었고, 당시 상용화된 고휘도 LED는 빨간색 밖에 없었습니다. 녹색, 청색 LED도 전존재 했지만 상용화되고 검증된 기술 사용의 철칙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검증 되었고 원가도 저렴했던 적색 LED를 적용하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마케팅으로는 공격적으로 닌텐도 다음의 후속작 휴대용 콘솔로 홍보를 시도합니다.

 당시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버추얼 보이( Vitual boy)에서 플레이된 마리오의 모습

 

배터리도 달려있었고 무선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말그대로 휴대가 가능했지만, 헤드 스트랩 대신 다리를 달아놓아 무언가 테이블에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플레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플레이에 제한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위 그림처럼 생긴 제품들을 파우치에 넣고 다니기에

 무게며 모양세가 우껴서 사람들이 들고다니면 무엇이냐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무게며 생김세 등으로 보아도 휴대용으론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컨트롤러도 양쪽에 십카리를 두는등 무선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들어있어 오래 들고 있기 불편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컨트롤러들과 너무나도 달랐기에 외면을 받는 요소로 충분했습니다.

마케팅과는 달리 최종 판매량은 전세계 77만대였으며. 버추얼 보이로 발매된 게임은 고작 22개가 전부였습니다. 아직 3D에 관련된 소프트웨어와 기술들이 발전되지 않았던 터라 더욱 닌텐도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앞서간 VR기기가 아닐가 싶습니다이렇게 버추얼보이는 끝이 났지만 VR기기의 시초를 열어준 기기라고도 할수 있습니다뒤이어 출시된 기기 닌텐도 64가 있습니다.


<닌텐도 64>


 닌텐도 641996623일 일본에서 출시, 1996929일 북미에서 출시, 유럽과 호주에서는 199731일 출시, 브라질에서는 19971210일에 출시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는 현대전자에서 1997710일에 현대컴보이 64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못가서 왕자의 난으로 현대전자 자체를 공중분해해 1998년 여름까지 4개의 게임을 판매했습니다. 슈퍼 페미컴 때처럼 게임내용은 북미판, 게임카트리지 형태는 일본판과 같습니다. 2002430일 단종이 되었습니다. 최종 판매량은 3,293만대, 많이 팔린게임은 슈퍼마리오 64입니다.

 개발 코드명은 프로젝트 리얼리티로서 실리콘 그래픽스 측이 제안한 물건입니다. 본래는 세가와 함게 개발하기로 했지만 일본 세가 측이 이를 걷어차 버렸고, 세가오브아메리카의 사장 토머스 칼린스키는 개발을 취소했으나 이를 대신 이어받을 사람이 있다며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소개해 주었고, 이것이 닌텐도 64로 이어졌으며 회고록에 남았습니다. 실리콘 그래픽스가 세가 대신 닌텐도를 선택한 것은 칩의 기술에 대해 세가가 독점권을 요구한 반면, 닌텐도는 비독점적이었기 때문에 실리콘 그래픽스에게 닌텐도가 좀더 매력적인 사업 파트너 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닌텐도 64는 이런 협력 관계를 통해서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모양새의 컨트롤러는 북미에서는 20세기 말 전자오락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다방면에서 쓰였습니다. 본격적인 아날로그 스틱의 채용과, 더 향상된 조작감을 제공하는 Z트리거 버튼, 게임의 조작을 간단하게 만드는 A,B 버튼 두 개만으로의 한정과 카메라를 다양하게 조작하는 C버튼 유닛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채용한 것이었고, 소니와 세가는 각각 '아날로그 컨트롤러', '세가 멀티 컨트롤러'라고 명명한 아날로그 스틱 컨트롤러를 출시합니다. 닌텐도는 단지 아날로그 스틱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슈퍼 마리오 64라는 진정한 3D 게임까지 만들어 낸데에 비하여 경쟁자들은 아날로그 스틱을 배끼는데에만 급급했을 뿐 이것을 가지고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나이츠 역시 아날로그 활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아날로그 스틱을 제대로 사용하는 게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닌텐도 64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게 1위의 자리를 넘겨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다음에 나올 게임큐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 게임보이 어드벤스 출시 >


<게임보이 어드벤스의 사진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


 닌텐도 64다음으로 나온 제품은 2001년 닌텐도에서 출시한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 어드벤스 약자로는 GBA입니다

 이게임기는 게임보이의 컬러로된 후속 버전의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입니다. 일본판은 321, 북미판은 611일입니다. 그리고 닌텐도의 두 번째 32비트 게임기입니다. 닌텐도 최초의 32비트 게임기는 GBA가 아니라 버추얼 보이입니다. 닌텐도의 첫 32비트 거치형 콘솔은 이게 출시되고 나온 그다음 버전인 게임규브입니다.

 Wii, Wii U까지도 기본적인 CPU 아키텍처가 동일했기 때문에 이 시기까32비트 거치형 콘솔이 나왔습니다

<게임보이 어드벤스 sp의 사진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

 2003214일에 발매되었으며, 최초로 접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닌텐도 DS의 시초가 되었고, 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를 내장했고, 프론트 라이트도 추가되어 LCD 품질이 훨씬 개선되었습니다. 본래 백라이트 또한 같이 탑재하려 했지만, 전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제외. 디자인에서는 애들 장난감처럼 보였던 GBA에 비해 심플하면서도 깔끔한 폴더형 디자인으로 성인층에게 크게 어필하였습니다.

 SP는 접이식이기 때문에 화면 보호가 가능합니다. 또한 굳이 백라이트 버전이 아니더라도 자체적인 프론트 라이트만으로도 충분히 밝습니다. 또한 배터리 역시 충전식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건전지를 갈아줘야 하는 기존의 GBA보다 압도적으로 편합니다.

 일본판에선 시현되지 않았지만, 전지 축전 기술의 발전으로 이후 2005년 북미에서만 백라이트를 탑재한 GBA SP를 출시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후에 대원에서 발매. 일단 프론트 라이트보다 훨씬 밝기 때문에 화질이 매우 뛰어납니다. 미크로와 달리 GB를 지원하기 때문에 GB를 가장 좋은 화질로 즐길 수 있습니다.

< 게임보이 미크로 Game boy micro >

 

<게임보이 미크로의 사진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

사진속 게임보이 미크로는 패미컴 20주년 기념 한정판이며, 클럽닌텐도 회원만 포인트를 사용해서 구매할 수 있는 패미컴 2P컨트롤러를 본뜬 한정판도 존재합니다. 

Gameboy Micro 영문은 Micro, 즉 마이크로이나 일본에서는 미크로로 읽고 미크로가 정식 명칭입니다. 그리고 어드밴스 기종이지만 이름에는 붙지 않습니다. 게임보이 어드벤스 구조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NDS 발매된 뒤에 발매된 후속기종으로 2005913일에 일본, 919일에 북미, 113일에 호주, 114일에 유럽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이렇게 추억을 가지고 있는 제품입니다


< 2001년 닌텐도 큐브 조용하게 발매되다.>

 닌텐도에서 2001914(일본) 출시한 6세대 가정용 게임기입니다. 닌텐도 64의 거치형 후속작 기종으로 약칭은 GC. 개발당시 코드네임은 Dolphin이었습니다. 2007년 단종까지 총 2,174만 대를 판매 하였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707만장의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DX였습니다.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20011121일 발매. 게임큐브용으로 발매 되었습니다. 국내에도 대원씨아이에 의해 스티커 정발(...)된 경력이 있습니다. 게임큐브 최다 판매 타이틀이자, 일본 내 유일한 밀리언 셀러작이기도 합니다.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 네이버 검색 로고사진>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DX 이미지는 사용상 첨부를 못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이미지 사용의 제한으로 올리지 못한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대신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로고로 대체합니다.)

 

닌텐도는 닌텐도 64를 통해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석권하려고 하였지만 실패를 하였습니다. 뒤이어 닌텐도 큐브 기기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전작에서 비판 받았던 구시대적 요소들을 상당수 갈아엎는 등 혁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이미 오래전에 단종되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또한 1년 반 앞서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2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발매 시기마저 큰 악재가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출시 일자가 9.11 테러 3일 후였고, 그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닌텐도는 열심히 만든 기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조차 닌텐도의 팬층을 제외하면 '닌텐도의 신형 게임기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을 정도로 조용히 발매되었습니다.

 홍보가 활발하지 않았던 점, 서드파티의 참여 부족이 겹치면서 악순환을 밟았습니다. 게임큐브가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닌텐도에서는 20038월부터 20044월까지 약 9개월간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또 판매 촉진을 위해 북미의 경우 20039월부터 99달러까지 할인을 했으며, 그 다음달에는 일본에서 14,000엔까지 가격을 인하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안팔렸으면 2004년 당시 게임큐브 팬들이 "에뮬레이터 만드는 것을 자제하자"라면서 에뮬레이터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들을 규탄했을 정도였습니다이것의 한몫을 한 것은 서드파티의 부제였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등장하는 닌텐도 DS >

<닌텐도 DS (출처: 나무위키) >

 20041121일 미국에서 출시하고, 2004122일 일본에서 출시, 호주에서 2005224일 출시 2005311일 유럽에서 출시 하게된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입니다

 한국에서는 2004122일 일본에서의 발매 이후 20041229일 대원씨아이에서 유통을 맡아 일부 소프트와 함께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참고로, 구 닌텐도 DS는 한국닌텐도에서 정식 발매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닌텐도에서 A/S가 불가능 했습니다.  대원씨아이표 정식 발매는 일명 '스티커 정발'이라고 불렸는데 하드, 소프트 모두 가리지 않고 성의 없이 한글화는커녕 일본판 그대로에 한글 스티커 하나 붙여 발매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본체의 초기 정식발매된 패키지의 경우 한국용 220V 어뎁터가 박스에 다 들어가지 않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으며, A/S도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대원씨아이 쪽에서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일본 본사로 보내서 수리하는 것이었으므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닌텐도 1996년 ~2005년의 느낀점 ]


 닌텐도의 성장에 있어 암흑기는 너무 나도 힘들었던 시절입니다. 그당시를 바라보며 닌텐도 DS가 나오기까지의 여정이 너무나도 힘들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유명한 스메쉬 브라더스를 제외하고는 많은 것들이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버추얼 보이를 통해 VR에 발을 딛은 만큼 많은 기술을 좀더 갈고 닦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3부에는 2005~ 2010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표 보도록 하겠습니다.  



1부를 보시려면 위 사진을 클릭해 주시기 바랍니다.


↑3부를 보시려면 위 사진을 클릭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